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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동아시아 불교 형성에..[불교신문/2012.02.15]
     작성자   :   김송이    (12-02-27     Hit : 1544)

“고대 동아시아 불교 형성에 신라 경주 불교가 기여했다”

 

‘한·중·일 3국 고도와 도시불교’ 세미나

 

 

 불교고도(古都)로서 경주는 불교문화와 사상적 입지에서 접근해야 한다. 특히 고대 동아시아 불교에서 중국불교 형성에서 신라의 경주 불교계가 기여한 측면은 상당하다.

 석길암 교수(금강대)는 동국대 불교사회문화연구원 주최 경주세미나(4일, 경주 동국대 100주년기념관)에서 “신라 불교인들의 서역과 인도 진출은 중국 장안(長安) 불교계를 매개로 하여 이루어졌지만 그들이 주도적이었다”며 “신라인들은 인도 구법에서 수(隋)와 당(唐) 초기 장안 불교계의 인도에 대한 인식과 거의 궤를 같이했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경주는 불교 수용으로 구조와 이미지가 전면 혁신적 변화를 초래했고 이는 다시 고대 동아시아 불교세계의 거점축으로 자리잡게 했다는 분석이다.

 사료 부족에도 불구, 울산을 내항(內港)으로 삼은 경주가 동남아 원산의 물품을 수입가공하여 중국 일본 사이를 중개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사례를 제시했다. 이는 그간의 경주불교를 중국불교가 매개로 서역과 인도불교와의 연관성을 찾아왔던 시각에 대한 도전이다.

 

중국불교에도 영향 끼쳐 경주 해양으로 교류 추진

석길암·임영애·김복순 교수 발표·토론 활발하게 전개

 

 중국 장안불교에 대해 발표한 빠이껀싱(拜根興) 교수(섬서사범대)는 당대 도시불교문화의 교섭과 전파에서 장안은 불교경전의 역경, 불교사원의 분포, 불교종파의 발전, 불교 고승대덕의 운집 등의 방면에서 불교문화의 집산지이며 융합장소라며 발전과정 자체가 국제화 특질성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인도 신라 일본 등 동아시아의 고승들이 장안을 찾고 중국 승려들 역시 만리역정을 거치며 서역을 넘어가 문화적 성분이 결집되고 개방적으로 천주교와도 교섭하며 불교의 최정화 문화가 배태됐다는 것이다.

 이의 토론에서 임영애 교수(경주대)는 “유불도의 상호마찰 및 교섭의 문제는 당나라보다 이전시대까지 심화되었던 문제”라며 불교가 외래종교로서 중국 정착에는 유교 도가의 비판적 시각이 크며 이는 동아시아 불교의 근간“이라 부언했다.

일본 헤이안쿄(平安京)와 사원의 관계 설명한 호리 유타카(堀裕) 교수(토호쿠대)는 9세기 전반 헤이안쿄 천황의 선조관이나 밀교 분담 체제와 이의 지지 구조는 사원의 특성이라며 “<인왕경>을 사용한 법회에서 쥰나 천황이 밀교 교의에 따라 국토 수호와 전법성왕임을 자각하는 하나의 방편이었다”고 평가했다.

 한편 왕경불교에 대해 김복순 교수(동국대 국사학과)는 경주는 교종일색이라며 “교선합작은 백고좌법회에 불과하고 흥륜사와 황룡사가 선종사찰이 된 것은 아니며 <삼국유사>에서도 선불교에 관한 언급은 없다”며 경주가 비보사찰 진호사찰이 주종인 이유를 설명했다.

 고대 일본의 도성(都城)과 사원의 관할범위를 논증한 다케우치 료(竹 亮) 오사카시립대 도시문화연구센터 연구원의 발표는 실증적이다. 7세기 이후 도성 안에 새워진 많은 사원(京寺院)들은 물리적 시설이 아니라 법제상 개념이 입증됐다.

 이에 원영상 교수(동국대)는 승니(僧尼)를 총괄하는 승강(僧綱, 곧 僧官) 등에서 ‘직원령’으로 행정상 직무가 세분화 됐었다며 경(京) 개념은 지리적 범위를 뛰어 넘어 역사적으로 축적된 왕권이나 국가와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는 반증으로 보인다고 논평했다.

 이어 부여와 경주 등 당시 수도로 많은 사원 유적이 발견되는 우리의 경우와 경(京)이란 일본식 국가 관리 사원과의 연계 해석에서 정교분리에 대한 연구를 향후 연구과제로 제시했다.

 

불교신문 김종찬 기자 [불교신문 2790호/ 2월11일자]

 

기사입력 : 2012-02-15  00:3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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